위스키 하면 왠지 사회 초년생은 다가갈 수 없는 비싼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소주같이 반주로 저렴하게 즐기는 것이 아닌 혼자서 여유롭게 즐기는 술로는 위스키 만한 것이 없는데
비싼 와인도 그렇지만 더욱이 위스키는 향으로 즐기는 술이라고 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향이 특징이다.
증류주의 특성상 다른 주류에 비해 저렴하진 않지만, 부담 없이 즐기기에 가격대가 착한 가성비 위스키를 만나보자..
1. Glenfiddich 15YOㅣ글렌피딕 15년
첫맛은 강렬하고 개성 있는 알코올의 맛으로 다가와 구수하고 그리운 여운을 남기고 떠나간다. 흡사 보리차의 맛과 향을 떠오르게 해서 한 모금 마신 후 몇 번 소리 내어 입맛을 다시게 되는 그런 술. 두 가지 각기 다른 음식과의 궁합을 최고로 치는데, 첫 번째는 소 곱창, 기름이 팡 터지는 곱창을 입에서 두세 번 씹은 후 글렌피딕 15년을 흘려 넣어 함께 삼키면 머릿속에 불꽃이 터지며 ‘성공의 맛’을 일깨워준다. 다른 하나는 집에서 먹기 좋은 스낵. 추억의 과자 에이스에 브라운 치즈를 0.3mm 두께로 잘라 얹는다. 사르르 녹는 브라운 치즈와 바삭 한 에이스가 글렌피딕 15년의 구수함과 달콤한 맛과 만나 향과 맛을 증폭시킨다. 위스키는 보통 니트로 즐기는 편이지만 여름밤에는 잘게 부순 얼음을 온 더록스 잔에 담아 얼음과 위스키를 함께 아작아작 씹어 마신다. 얼음과 위스키가 입에 들어오는 비율을 적절히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11~12만 원대 수준
2. the GlenGrant Arboralisㅣ글렌그란트 아보랄리스
무림 고수가 20대에는 명검을 갖고 천하를 호령하다가, 40대가 되니 회초리로도 세상을 평정하는 느낌. 글렌그란트 아보랄리스를 마실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마스터 디스틸러 데니스 말콤의 60년 경력이면 계곡물도 3일이면 위스키로 만들 수 있는 기적이 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이 술은 샤워 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데이빗 마일스의 색소폰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미생에 나오는 ‘묘수, 혹은 꼼수는, 정수로 받습니다’라는 대사를 떠올리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옳은 길일 거라고 믿으며 잠자기 전 한 잔 즐긴다. 글렌그란트 아보랄리스의 화사함을 더 명확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탄산 함유량이 높은 페리에와의 하이볼로 만들어본다. 일반적인 하이볼 비율은 술 1: 탄산수 3 비율이지만 1:3.5 정도로 조정하고 라임 웨지를 활용해 한 번에 들이켠다면 하루의 피로는 씻겨나간다. 6만 원 초반대 수준
3. The Glenlivet 12 Years Oldㅣ더 글렌리벳 12년
잘 익은 파인애플과 사과의 풍미. 부드럽고 달콤한 이 풍미는 휴양지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햇살 가득한 여름날의 오후에는 탄산수를 가득 넣은 하이볼로 싱그럽게 즐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름밤에는 달빛 아래에서 니트로 즐겨도 좋다. 파인애플의 풍미를 가득 담은 더 글렌리벳 12년은 말린 과일, 특히 파인애플이나 건망고와 잘 어우러진다. 사과나 사과 드레싱을 가득 넣은 샐러드, 그리고 애플파이와도 좋은 궁합. 한 번은 여름 바닷가에 앉아서 더 글렌리벳 12년을 하이볼로 즐겼는데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산뜻하고 싱그러운 기분에 취했다. 8~9만 원대 수준
4. Monkey Shoulderㅣ몽키숄더
싱글 몰트는 아니지만 100퍼센트 몰트로 만들기에 은근한 뚝심도 느껴지는 위스키. 닭발, 곱창볶음, 주꾸미 등 매운 음식에 곁들이면 부드럽고 향긋한 몽키숄더가 입안을 정리해주어 그 빛을 발한다. 몽키숄더 하이볼을 만들 때는 탄산수보다는 진저에일이 잘 어울린다. 냉동실에 얼려 놓은 과일-레몬이나 블루베리, 라즈베리 할 것 없이 모두 환영-을 꺼내 가니시로 얹으면 그럴싸하다. 가니시 여부가 알코올 세계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개인적 기준이다. 5만 원대 수준
5. Ardbeg 10Yㅣ아드벡 10년
개성 강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꼽자면 대부분 ‘피트 향’이 강한 위스키를 꼽는다. 병원 냄새, 소독약 냄새로 표현되는데 좀 더 세밀하게 얘기하면 ‘정로환 맛’에 가깝다. 보틀을 오픈하면 학창 시절 과학실에서 맡았던 요오드의 강렬한 향이 먼저 느껴지는데,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잔을 돌려가며 향을 맡으며 맛보면 그을린 듯한 내음과 매캐한 시가 향,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짭조름한 맛이 어우러지며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맛을 선사한다. 이 위스키의 독특한 맛은 고수나 민트 초코 못지않게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아드벡 입문자’라면 니트로 마시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아드벡 하이볼(일명 ‘아하’)을 추천한다. 단맛이 나는 토닉워터보다는 드라이한 클럽 소다나 일반 탄산수를 준비한다. 잘라둔 레몬을 푹 담그지 말고 살짝 스프레이 하듯이 잔 위로 가볍게 스퀴징 하면 스모키 한 풍미에 시트러스 향이 가볍게 더해지며 소위 ‘앉은뱅이 술’이 된다. 가격이 궁금해 검색하다 보면 이 위스키를 8~9만 원대에 구매했다는 귀한 후기 글도 종종 보이지만 전생의 일처럼 느껴진다. 위스키 대란 이후 “오늘 사는 위스키가 가장 저렴하다”는 건 진리가 되어가고 있다. 대형 브랜드의 위스키처럼 대량 유통되는 제품이 아니므로, 10만 원대 초반에 눈에 띄면 바로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취향이 아닐 순 있지만 위스키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은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 와인앤모어 기준 700mL 10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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